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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어느 부부의 대화, 분노와 홧병, 타박에 대하여

by lovelykorean 2025. 2. 16.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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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부부의 대화, 분노와 홧병, 타박에 대하여

    남편 : 당신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에요.

    아내 : 뜬금없이?

    남편 : 나는 항상 내 중심 감정이 분노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살아왔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화날 법한 일은 반드시 화를 내며 짚고 넘어가야만 정의가 바로 선다고 생각해 왔죠.

    아내 : 그건 정말 스스로를 괴롭히는, 피곤한 성격이야.

    남편 : 당신의 그런 사고방식, '화를 내면 그 분노가 화를 낸 당사자인 나 자신을 집어삼키고 병들게 한다'는 개념 자체가 나에겐 굉장히 생소한 것이었어요. 화는 마음 속, 내부에서 시작되어 밖으로 표출되고 외부로 향하는 감정이잖아요? 밖으로 방출한 감정이 어떻게 나 자신을 상처 입힌다는 건지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내 : 당연한 것 아닌가요? 한 번 타오른 분노의 불길은 모든 것을 구분 없이 불태우고, 나와 타인을 모두 상처 입힐 뿐이니까요.

    남편 : 예를 들어, 당신이 유리컵을 깨뜨렸다고 치면, 예전의 나였다면 바로 "어휴, 조심 좀 하지 그랬어요! 어쩌다가 깬 거예요? 안 다쳤어요?"라며 책임 소재와 유리컵을 깨뜨린 과정을 파악하고 난 다음에야 부상 여부, 청소 등을 신경 썼을 거예요. 이게 내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순서와 구조예요. 그런데, 우리 결혼생활 초기에 내가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렸을 때, 당신이 내게 보여준 반응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아내 : 내가 뭐라고 했는데요? 나라면 "안 다쳤어요? 치우는 거 도와줄 테니 조심해서 이쪽으로 건너와요."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

    남편 : 정확해요. 당신은 날 타박하지 않았어요. 어쩌다 깨뜨렸는지도 묻지 않았고, 내게 눈꼽만큼의 짜증도 부리지 않았어요.

    아내 :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실수로 떨어뜨렸을 거야 뻔한 일이고, 이미 컵은 깨졌고, 왜 깨뜨렸냐고 비난해 봤자 의미 없는 짓이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치워야 할 위험한 유리조각과 쓰레기들 뿐이잖아요? 눈앞에 놓인 문제부터 빨리 해결해야지, 컵을 깨뜨린 사람을 타박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시간낭비일 뿐이죠.

    남편 : 그게 놀랍다는 거예요. 난 어떤 문제가 터지면, 그 문제를 터뜨린 상대에 대한 원망이 먼저 샘솟아요. 그런데 유리를 깨뜨린 날 전혀 비난하지 않는 당신의 태도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왜? 분명 내가 잘못했는데? 왜 날 혼내지 않는 거지? 난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비난받아 마땅한데?

    아내 :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전 그런 상황에서 분노가 솟구친다는 개념 자체가 잘 이해가 안 돼요.

    남편 : 어쨌든 그런 당신의 태도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내 성격을 크게 깨부셨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이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린 날이 있었죠. 그때, 나도 내 내면에서 올라오는 행동양식을 따르기 보단, 당신이 보여주었던 행동을 따르려고 노력했어요.

    아내 : 어떻게 했었죠?

    남편 : "여보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놀랐죠? 저쪽으로 가서 좀 앉아요. 내가 치워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거 어차피 오래된 거라서 바꿀 때도 됐어. 새로 하나 삽시다."라고 말하고 내가 청소했지요.

    아내 : 흠.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도 같아.

    남편 : 나한테는 내 성격을 180˚ 바꾼 계기가 된 충격적인 사건이니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의 유(柔)한 성격과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말 시나브로 나에게 스며들었어요. 그 중 하나로는 운전 도중에 자동차 안에서 욕하는 것도 있었어요.

    아내 : ㅎㅎㅎㅎ

    남편 : 알다시피 나는 항상 방어운전, 안전운전을 하고, 끼어들기를 할 때에도 순서를 철저히 지켜 줄을 서서 내 차례가 아니면 절대 끼어들지 않아요. 그런데 위험천만하게 곡예 운전을 하거나 깜빡이도 없이 칼치기를 하며 차선을 바꿔대는 운전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욕지꺼리가 나와요. "뒤질려면 혼자 뒈질 것이지, 왜 엄한 사람까지 저승길 길동무로 같이 끌고 들어가려고 하냐! 개놈의 자슥, 소놈의 자슥..."

    아내 : ㅋㅋ 뭔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겠네요.

    남편 : 근데 당신은 항상 내게 말했죠. "그렇게 욕을 하고 싶으면 옆 차선까지 따라가서 빵빵 클락션 울리고 창문 내려서 뻑큐 날리면서 속 시원하게 큰 소리로 욕하시라."고. "대체 왜 상대방에겐 들리지도 않을 욕을 창문 다 닫힌 차 안에서 개새끼 소새끼 하고 계시냐."고. "결국 그 욕을 듣는 것은 아무런 죄도 없는, 옆자리에 탄 당신 마누라이지 않느냐."고.

    아내 : 맞는 말 아닌가요?

    남편 : 난 솔직히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당신한테 너무 화가 났어요. "안 그래도 저놈이 운전을 X같이 해서 날 성질나게 만들었는데, 당신까지 날 긁어대는 이유가 대체 뭐냐, 나 홧병나서 넘어가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느냐?" 싶었지요.

    아내 : 난 당신이 화를 내는 기전 자체가 잘 이해가 안 돼요. 너무 놀라서 반사적으로 욕이 좀 튀어나올 수는 있지만, 당신은 운전 뭐같이 한 저놈 당사자가 당신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대화하듯 계속 욕을 하잖아요. 상대방이 그 욕을 들으면 제 잘못을 깨닫고 다음부턴 행실을 똑바로 고칠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당신의 욕을 못 듣잖아요. 그러니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죠.

    남편 : 처음엔 당신이 분노 폭발하는 나를 가라앉히겠답시고 그런 말을 해서 날 오히려 조롱하고 더 화나게 만들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똑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닫게 되더라구요. '아, 이 여자는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는 거로구나. 분노의 감정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상대방이 듣지도 못할 욕을 내뱉는 게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구나.'

    아내 : 내 입장에선 너무 당연한 소리라서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남편 : 당신은 내가 운전하면서 나도 모르게 욕을 뱉는 상황이 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똑같은 얘기를 했지만, 당신의 그러한 사고방식을 온전히 깨닫고, 운전 위험하게 하는 운전자들에게 더 이상 분노하며 욕설을 쏟아내지 않게끔 되는 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어요. 아마,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애저녁에 운전하는 도중 홧병나서 뒷목 잡고 쓰러졌을지도 몰라요.

    아내 : 대체 왜 그렇게 분노가 쉽게 치솟는 것 같아요?

    남편 : 그냥,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인과관계와 책임소재를 먼저 따지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이 선행된 다음에 대책을 마련하도록 교육받아온 것 같아요.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나 사소한 실수도 비난받아야 할 부분은 확실하게 질타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그런데 당신과 함께 살면서 당신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배우게 되면서, 어차피 따져봤자 뻔할 뻔 자인 책임소재를 두 번 세 번 파고들어 잘잘못을 따지고 드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벌어진 일을 빠르게 수습하고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어요.

    아내 : 그야말로 내 사고방식 그 자체네요. 나는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잘잘못과 책임을 따져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아요. 일단 사건부터 수습해서 해결하는데 집중하고 나면, 화가 날 법한 상황이었더라도 자연스레 화가 가라앉게 되죠.

    남편 : 금연에 완전히 성공한 지금에서야 과거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자주 치솟았던 이유 중 하나로 담배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요. 담배를 피우면 흡연하는 그 순간만큼은 화를 가라앉히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 평소에는 항상 잔잔하게 짜증이 깔려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아내 : 난 당신이 담배를 못 피우면 항상 심하게 짜증내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걍 평생 피우시라고 했었죠. 그런데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독하게 끊어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솔직히 정말 끊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남편 : 장인어른도 나처럼 사서 스트레스 받으시는 성격이시잖아요?

    아내 : 우리 아버지도 그렇죠. 그러고보면 난 평생 아빠랑 성격이 닮지 않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어떻게 만나다 보니 아빠랑 똑 닮은 성격의 남자랑 결혼했네? 예민 보스에 잔잔하게 짜증을 달고 사는 툴툴 대마왕이랑?

    남편 : 내가 예전에 운전하면서 나도 모르게 욕하고 성질내고 홧병났었다는 얘기를 장인어른께 했더니, 장인어른께서도 "나도 자네랑 똑같다네! 나도 생전 욕이라곤 안하는데, 운전 못되게 하는 놈들만 보면 화가 차올라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네."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당신이 한 말을 그대로 들려드리고, '차 안에서 욕해봤자 그걸 되듣는 나만 욕설과 분노에 의해 상처입는다.'라는 개념을 알려드리면서 "저도 아내 덕분에 분노를 절제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화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장인어른께서 꽤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더라구요.

    아내 : 아버지께서 왜 충격을 받아요?

    남편 : "내 딸이 생각보다 보살님이나 성모님 같이 마음씨에 큰 그릇을 가지고 있구나. 나도 이제 아량을 넓게 가지도록 노력해 봐야겠네."라고 하시더군요.

    아내 : 에그, 낯 간지러우니 비행기 그만 태워요. 걍 당신은 인간의 감정이라곤 없는 빅 T의 엔티제고, 난 분쟁을 피하고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잇프피라 그래요. 어쨌든 당신도 많이 사람 됐다는 것 하나만큼은 인정할게요.

    남편 : 항상 편두통에 시달릴 정도로 홧병을 주체하지 못하던 나를 분노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 주어서 고마워요. 당신은 애초에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 평생 체감할 일 없겠지만, 가슴 속에 가득 차있던 분노를 놓아버리고 더이상 화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건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일이에요. 담배를 끊어내고 흡연의 욕구에서 자유로워진 것 만큼이나! 당신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난 벌써 홧병으로 뒷목 뻣뻣하게 굳어서 뒤로 넘어가 뇌출혈로 사망했을거야.

    아내 : 그렇게 고마우면 아이스 카페라떼나 한 잔 사줘봐요.

    남편 :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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