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독교 존재 이유 중 하나가..."교회가 인간 세탁기도 아니고!" (인간 세탁기임)
종교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우리는 종교를 대할 때 사람답고 선하게 살기 위해, 힘들고 외로운 삶이라는 어둠 속 등대의 불빛 같은 큰 스승으로서 선지자를 섬기고, 그들이 추구했던 삶의 자세와 그들의 뜻을 따르는 구도자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쟁이는 '돈'이 되다 보니 마치 동전 넣으면 물건 나오는 자판기처럼 기도, 헌금, 불전, 치성만 넣으면 소원 성취가 튀어 나오리라 믿는 '종교질' 나부랭이로 변질되곤 한다.종교란 대저 무엇인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에 빠진 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천지만물의 법칙과 삼라만상의 조화를 이해하고 사람의 쓰임에 도움이 되게 하고자 치열하게 공부한 결과물이 종교이다. 결국 종교란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끝없는 고뇌의 산물이며, 누군가 대신 이뤄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이루어야 하는 마음의 깨달음을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언가(대개는 재물이나 지위)를 소중하게 그러쥐고 있어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잃고, 내려놓고, 또 열렬하게 사랑하고, 애절하게 염원하고, 닿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여 토로하다가, 또 그러한 모든 것들이 한백년 인생사에서 그다지 별거 아닌 것에 불과하며, 결국 다른 이를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 이 모든 '삶'의 과정을 조금 더 수월하고 아름답게, 덜 고통스럽게 수행하길 바라는 '선생님'들의 진심어린 조언들이 뭉치고 모여 만들어진 것이 '종교'인 것이다.종교의 본질은 사람들이 '감사함'과 '사랑', '나눔', '베풂'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맛있게 잘 익어진 치킨 한 마리의 풍성함에 들어간 노력에 감사하려면 어디까지 감사해야 할까? 치킨을 갖다준 배달부님? 치킨을 튀겨준 사장님? 치킨을 잡아준 도살, 가공업자님? 치킨을 키워준 양계장 농장주님? 더 나아가, 우리에게 한 몸 바쳐 식탁을 풍요롭게 해 준 닭 그 자체에게도! 그리고, 그 닭을 낳고 길러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던 다른 닭들에게도! 그 닭을 키우고 살찌게 했던 사료와, 물과, 풀벌레도! 기왕 감사한 김에 끝까지 뇌절해보자. 닭을 튀긴 기름을 짜낸 식용유 업계 사람들, 튀김기 등 금속 주방기구를 만든 금속 가공 업계 사람들, 치킨 포장 박스와 비닐 봉지를 만든 사람들, 식지 않게 배달해주는 일등공신 오토바이를 만든 사람들까지. 감사의 마음을 가지려면 얼마든지 고맙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세상이 이렇게도 많이 널려있다. 우리는 행복하게도, 우리 주변에 흔히 널려있는 이 모든 이들을 모두 '신'으로 여기며, 그 모든 베풂과 나눔에 무한히 감사할 수 있다.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부처님이 내려주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량한 베풂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무릇 종교인이라면, '신'의 이름으로 위장하여 '사람'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베풂보다, 눈에 보이는 베풂으로 내게 은덕을 입혀준 고마운 '사람들'이 곳곳에 있지 않은가? 이렇게 고마운 이들에게 꾸준히 고마움과 사랑을 전달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나와 내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고 부처님이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끝없이 깨닫기를 소망하라. 끝없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기를 염원하라.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선행하고, 나누고 베풀며, 내 삶을 묵묵한 사랑과 실천의 삶으로 채우는 방법 밖에는 없다. 기도와 묵상, 108배 절과 경배도 종교적으로는 중요하겠지만, 결국 그러한 깨달음이 사람에게 가닿지 않으면 무량한 지식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성경이며 불경을 몇 만 자를 외고 교회당 불당 법당에서 높은 지위에 앉아 꺼드럭 거린다 한들, 묵묵히 자원 봉사에 나서 소외된 자들을 돕는 이의 따스한 손길보다 성스러울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 충만한 사회,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사회,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안락함과 행복을 느끼는 사회. 그곳에 곧 천국과 극락정토가 강림할 것이다.